제목 | [매일경제] [단독] 뇌에 칩 심은 원숭이가 생각한대로 로봇팔 조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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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1,235 | 등록날짜 | 2019-04-10 | ||
9일 수원 장안구에 소재한 특수 영장류 실험실.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해 놓은 원숭이가 눈앞의 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원숭이 앞에는 뇌에 삽입된 칩의 신호를 읽을 수 있는 컴퓨터 조작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팔이 설치돼 있었다. 7~8초 단위로 공의 위치가 무작위로 바뀌었지만 그때마다 로봇팔이 마치 원숭이 팔인 것처럼 공을 따라가 손으로 부드럽게 공을 잡았다. 손정우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의학과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10월 국내 최초로 영장류 뇌에 심은 미세전극 칩이 감지하는 뇌신경세포(뉴런) 신호로 영장류 생각을 읽어 그 의도대로 기계를 움직이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실험에 성공했다. 이날 실험실에서 만난 손 교수는 "사지마비 환자들에게 평범한 일상을 돌려주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재활 기술"이라며 "이런 기술은 사람과 뇌 구조가 가장 비슷한 원숭이를 통해서만 검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2016년 6월부터 연구에 착수해 지난해 4월 당시 6세였던 이 붉은털원숭이의 대뇌피질 안쪽에 가로세로 4㎜ 크기의 미세전극 칩 2개를 심는 수술을 진행했다. 하나는 원숭이의 생각을 읽어내기 위한 칩이고, 다른 하나는 향후 후속 연구를 통해 로봇팔로 인식한 정보를 역으로 원숭이 뇌에 전달하기 위한 칩이다. 하나의 칩에는 뇌 반응에 따른 뇌신경세포 전기신호를 읽을 수 있는 96개의 탐침이 탑재돼 있다. 탐침 1개당 2~3개의 뇌신경세포 신호를 읽을 수 있다. 원숭이의 건강 상태는 현재까지 양호하다. 손과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영장류는 3차원적으로 팔을 뻗을 때 그 방향에 따라 뇌신경세포가 특정 운동신경을 자극하는 일정한 전기신호 패턴을 보인다. 손 교수는 "눈으로 책상 위에 놓인 컵을 보고 손을 뻗어 집어 드는 단순한 동작을 하는 데만 약 30가지의 미세 방향 조정이 이뤄진다"며 "뇌신경세포 신호를 분석하면 이런 3차원상의 팔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숭이가 눈으로 공을 보고 잡으려 할 때 나타나는 뇌 신호는 탐침을 통해 중앙서버로 전달되고, 컴퓨터가 뇌 신호의 패턴을 해독해 어떤 동작에 해당하는지 그 의도를 파악한 뒤 그에 맞게 로봇팔이 작동하도록 명령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특정 위치에 공을 줬을 때 원숭이가 로봇팔을 뻗어 정확하게 공을 잡을 확률은 평균 83.8%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시도 횟수 중 원숭이의 시각적인 주의력이 떨어져 스스로 공을 잡으려 하지 않은 경우를 포함한 수치다. 손 교수는 "처음 시도할 때는 성공률이 50% 수준이었지만 4~5일 훈련을 거친 뒤에는 성공률이 88%까지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2021년 2월까지 후속 연구를 통해 기술 정확도를 높이고 로봇팔로 외부 환경을 인식해 원숭이의 뇌에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다. 손 교수는 파킨슨병, 치매 같은 뇌 질환은 물론 각종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는 영장류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손 교수는 "1990년대 후반부터 뇌신경질환 치료와 재활에 널리 활용되고 있는 '딥 브레인 스티뮬레이션(DBS)' 기술은 영장류를 활용한 전임상 실험을 통해 개발된 기술"이라며 "현재 세계적으로 10만명 이상이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영장류 연구는 한 마리를 활용한 실험 세팅에만 수억 원이 들고 최소 3~5년 이상 실험을 이어나가야 하는 만큼 국가 차원의 투자와 지원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침습식 BCI 실험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연구진은 2015년 사지마비 환자의 뇌에 칩을 심은 뒤, 2차원적으로 로봇팔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2016년에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와 파인스타인의학연구소 공동 연구진이 대뇌피질 안쪽의 칩에서 읽은 뇌신경세포 신호를 손목에 붙인 전극 패치로 전달해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뉴럴 바이패스'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로 원숭이의 의도를 실시간으로 읽어 로봇팔을 3차원적으로 제어하는 데 성공한 것은 앤드루 슈워츠 미국 피츠버그대 신경생물학 특훈교수 연구진이다. 2008년 당시 연구 결과는 네이처에 발표됐다. 손 교수는 슈워츠 교수의 제자로,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뒤 2010년 한국에 들어와 관련 연구를 이어왔다. [수원 = 송경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